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手語(수화언어)통역 26년 베테랑 조성현 한국수어통역사협회장
18-04-02 05:24 1,033회 0건

보도날짜 : 2018.03.30
보도처 : 매일경제
URL 주소 : http://news.mk.co.kr/newsRead.php?year=2018&no=205155

 

5代에 걸친 대선토론·메인 뉴스에서 手語통역…`TV속 작은 동그라미` 청각장애인의 귀가 되다
“전례없다”는 IOC 반대 불구…패럴림픽 현장통역 이뤄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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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설명조성현 한국수어통역사협회장이 활짝 웃으며 청각장애인 언어인 수어로 "예쁘다"고 말하고 있다. 수어는 손짓만 중요한 게 아니라 표정이 절반 이상을 차지한다. 왼쪽 아래 사진은 동계올림픽 개막식 수어 통역 장면을 캡처한 것. [이충우 기자]
제아무리 화려한 동계스포츠의 향연이 펼쳐져도 경기 화면 오른쪽 아래 동그라미 안만큼은 누구도 침범할 수 없는 수어(수화언어) 통역사 조성현 씨(52)의 공간이다. 그의 손짓과 표정이 없으면 청각장애인들은 세상과 소통할 수 없다.

수어가 TV 너머의 세상과 이어주는 동아줄인 셈이다. 그러나 동그라미를 사수해야 하는 통역사들의 현실은 결코 녹록지 않다.
담당 PD가 방송 직전 "오전 9시 30분, 12시, 오후 2시 반 가능할까요"라고 통보하면 곧바로 달려가야 하는 24시간 대기조다.

"평창동계패럴림픽 중계방송 시간을 더 편성할 수 없는지 살펴달라."

지난 12일 문재인 대통령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누구보다 바빠진 사람도 조씨다. 기자와 만나기로 약속된 인터뷰 시간도 두 차례나 바뀌었다. 대통령의 한마디에 지상파 3사가 일제히 편성을 늘리면서 조씨의 스케줄은 숨 돌릴 틈 없이 빠듯해졌다.

평창동계올림픽 개막식부터 제15~19대 대선 토론, 메인 시간대 뉴스에 이르기까지 굵직굵직한 프로그램의 통역을 도맡아온 26년 차 베테랑인 그는 이제 한국수어통역사협회장으로서 목소리를 내고 싶다고 말한다. 그에게 청각장애인들의 언어인 수어 통역의 세계에 대해 들어봤다.

―많이 바쁘신 것 같다.

▷예를 들어 최근 끝난 패럴림픽은 대통령 한마디에 중계방송 편성이 대폭 확대되면서 지상파 방송국에서 다급하게 연락이 왔다. 그럴 경우 오전부터 오후까지 연달아 일정이 잡혔다. 경기 영상 하이라이트 방송도 있고, 생방송도 있다. 수어 통역사들은 방송사 직원이 아닌 프리랜서라 사전에 합의된 스케줄이 없고 불러주는 시간대에 가야 한다. 방송 전날 이렇게 문자메시지나 메일이 오면 최대한 일정을 조율해보고 안되면 대타를 연결해주기도 한다. 방송사가 몰려 있는 여의도 근방을 벗어나지 못한다.

―몸이 힘들지는 않은가.

▷릴레이 편성은 아무래도 체력 소모가 많다. 카메라 앞에서 어깨를 들고 허리를 꼿꼿이 펴고 하다 보니 어쩔 수 없다. 보통 외부 현장 행사는 30분을 기준, 방송은 1시간을 기준으로 교대하긴 하는데, 교대를 못하는 경우도 종종 있다. 예전 2008년 베이징올림픽 개막식 때는 4시간여를 휴식 한 번 없이 서 있었는데 끝나자마자 녹초가 돼 침 맞으러 갔다. 세월호 방송 때도 거의 하루 종일 통역을 했다.

―직업병도 있나.

▷손목터널증후군이나 손가락 관절염 같은 건 다들 가지고 있다. 지화라고 손가락을 움직이는 일이 많기 때문이다. 가령 평창이라고 하려면 "'ㅍㅕㅇㅊㅏㅇ"' 이런 식으로 한글 하나하나 먼저 쓰고 시작하는데, 이런 걸 습관적으로 하다 보니까 어느 날 손가락 관절 마디마디가 쑤시더라. 손목이 아픈 터널증후군도 오고. 나이가 들면 어깨나 목에 근육통, 결림 등을 호소하는 분도 많다.

―올림픽과 패럴림픽은 수어로 어떻게 표현하나.

▷양손 손가락 엄지와 검지로 동그라미를 만들면, 동그라미가 두 개 생긴다. 이 동그라미를 고리 모양으로 연결하기를 세 번 반복하면 올림픽을 가리키는 수어가 된다. 오륜기는 동그라미가 다섯 개지만, 다섯 번 다 하긴 힘드니까(웃음). 패럴림픽은 장애인 올림픽이니까 올림픽 앞에 장애인만 표현해주면 된다. 장애인을 가리키는 수어는 88 서울패럴림픽 마스코트였던 "'곰두리"'를 본떠 만들어졌다. 곰돌이 두 마리가 2인3각 경기를 하는 모습을 형상화했다.

―수어가 새로 만들어지기도 하나.

▷당연히 없는 단어도 많고, 그때그때 필요에 따라 만들어진다. 현재 수어로 표현할 수 있는 단어 가짓수는 한글의 10분의 1 정도라 보면 된다. 계속해서 새로운 단어가 생긴다. 월드컵이란 수어도 2002년에 처음 생겼고, 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SARS·사스)은 사스가 유행할 때, 중동호흡기증후군(MERS·메르스)은 메르스가 유행할 때 생겼다. "'헐"' "'대박"' 등 신조어도 마찬가지다.

―평창올림픽 수어 통역과 관련해 아쉬운 점은.

▷수어 통역을 화면에서 연일 넣었다 뺐다 해 중간에 흐름이 끊기는 게 아쉽다. 사전에 약속된 큐시트와 달리 담당 PD들이 재량으로 건너뛰는 경우가 많은데, 청각장애인들 입장에서는 마치 TV 볼륨을 켰다 껐다 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누군가 계속 음소거 버튼을 누른다고 생각해봐라. 당연히 시청에 방해가 되고 몰입도가 뚝뚝 떨어질 수밖에 없다. "어차피 중요한 건 경기인데, 통역은 없어도 되지 않느냐"고 생각할지 모른다. 그러나 일반 대중도 중계 캐스터 없이 음소거 화면만 보면 경기에 대한 이해가 떨어지듯 청각장애인들도 똑같다.

―수어 통역이 생략되는 일이 비일비재한가.

▷그렇다. 항상 보는 PD분들조차 "서비스로 시간을 더 넣어줬다"고 말하곤 한다. 그러나 통역은 내킬 때만 "'덤"'으로 얹어주는 서비스가 아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해설이 다 있는 게 정상이라는 얘기다. 보통 방송 프로그램은 소리가 1초라도 안 나가거나 중간에 끊기면 "'방송 사고"'라고 하면서 청각장애인들에게는 굳이 "안 들어도 되지 않느냐"고 말하는 건 문제가 있다.

수어도 엄연히 언어고, 이를 요구하는 것은 청각장애인들의 권리다. 이번 올림픽 개막식도 약 3시간 분량의 통역을 진행했는데, 많이 잘리고 막상 화면에 송출된 시간은 5분 안팎이었다.

―송출을 안 하는 이유가 뭔가.

▷법적으로도 전체 방송 시간의 5%에 수어 통역을 넣어야 한다는 할당만 채우면 된다. 그러다 보니 모두 그 최소 기준만 맞추고 아무도 더하려 하지 않는다. 물론 수어 통역사가 있는 오른쪽 아래 동그라미가 거슬릴 수도 있고, 별도 조명이나 편집까지 세세히 신경 써야 하니까 번거로울 수 있다. 중간에 수어 통역이 자꾸 끊기면 청각장애인들은 방송국이 아니라 애꿎은 통역사를 원망한다.

―올림픽 방송 말고 현장에서도 수어 통역을 했나.

▷이번 평창동계올림픽에서 현장 전광판에 수어 통역을 한번 도입해보려고 개막식, 폐막식 때 일부 통역사들이 찾아갔었다. 그런데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차원에서 "역대 올림픽에서 수어 통역을 제공한 전례가 없다"며 전부 돌려보냈다. 그러나 시청권을 보장해달라는 청각장애인들의 요구가 커지면서 이번 패럴림픽에서는 개·폐막식 전광판에 수어 통역이 들어가 안도했다.

―수어 통역사가 되려는 사람은 많은가.

▷현재 국내에 있는 수어 통역사는 1500명 정도로 추정되며 매년 100~200명씩은 배출된다. 특히 수화 언어법이 통과된 뒤로는 한글뿐만 아니라 수어도 국어로 인정됐고, 나사렛대나 재활복지대 등에서는 아예 수어를 전공으로 채택하고 있다. 서울대나 연세대, 고려대 등 주요 대학에서도 교양 과목을 수강할 수 있다. 예전에 알음알음 독학하던 시절에 비하면 교육 여건은 나아진 것이다. 수어뿐 아니라 청각장애 관련 이론들까지 배운 훌륭한 인재들이 양성되는데, 책으로만 배우다 보니 현장에서 잘 써먹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아직까지는 체계가 잡히지 않았지만 공교육에서 국어를 배우듯 수어를 의무적으로 배우는 시기가 올 수도 있지 않을까.

―수어를 잘하려면 얼마나 배워야 하나.

▷많이 물어보는데 영어나 다른 외국어랑 똑같다고 보면 된다. 나는 초등학교 입학하고 대학생 때까지 12년 넘게 영어를 공부했지만 미국인을 만나면 "'nice to meet you"'도 입에서 잘 안 떨어진다.

수어도 마찬가지다. 초급, 중급, 전문가 과정까지 밟고도 전부 잊어버려 기초부터 시작하는 사람이 수두룩하다. 10여 년 동안 배우기만 하는 사람도 봤다. 결국 실생활에서 얼마나 쓰는지에 달려 있다. 최근에는 후배들에게 "더 이상 배우지 마라. 이미 통역사가 되고도 남을 실력인데, 안 써서 못하는 거"라고 말하곤 한다. 나도 뒤늦게 배우기 시작했기 때문에 3개월 기초과정만 마치고 한참 나이 어린 선배들 따라다니면서 현장에서 부딪치면서 익혔다. 한 2년 지나니까 청각장애인들이 "수어 좀 하네" 하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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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설명조성현 회장이 수어로 통역하고 있다.
―근무시간은 어떻게 되나.

▷지금은 KBS에서만 뉴스 프로그램 4개를 고정으로 담당하고 있다. 예전에는 월·화·수·목·금·토·일요일 주 7일 하루도 빠짐없이 일했는데 최근에는 프로그램을 나누는 대신 요일별로 업무를 후배들과 분배해서 주말에는 쉰다. 나머지 시간에는 한국수어통역사협회 회장으로서 활동하면서 법인 승인을 받아내는 데 주력하고 있다. 전체 수어통역사 약 1500명의 50% 이상이 가입해야 보건복지부 허가를 받아 대표성을 띤 법인을 설립할 수 있다는데, 아직 회원 수가 전체의 7~10% 수준이라 갈 길이 멀다.

―권리 보호가 많이 미흡한가.

▷갑을병정의 "'정"'쯤에 위치하지 않나 싶다. 아무래도 수어 통역이 장애인들을 위한 자원봉사에서 출발했다 보니 아직은 통역사를 전문가라기보다는 자원봉사자 내지 심부름꾼이라고 인식한다. 일부 청각 장애인들도 당연히 그분들이 원할 때, 대가 없이 서비스를 제공받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또한 한국농아인협회 차원에서 수어통역사 자격증을 발급하기 때문에 그들이 통역사의 "'수어를 못 알아보겠다"' "'실력이 없다"'고 하면 어쩌나 노심초사하기도 한다.

―지난 대선토론에서 생각나는 에피소드는 없나.

▷통역사는 항상 중립이어야 한다. 가령 TV 대선토론을 할 때도 특정 정당을 지지하거나 정치색을 드러내면 통역에 대한 신뢰가 떨어지지 않겠나. 개인적으로는 다 보수, 진보 등 성향이 나뉘겠지만 그것이 개입돼서는 안 된다. 후보가 좋은 메시지를 전하는데 다른 의도로 나쁘게 꾸며낼 수도 있지 않나. 선거철이면 유세 현장에서 통역을 담당해달라는 요청이 지인을 통해 들어오곤 한다. 선거운동 기간이라 보수를 받으려면 입당을 해야 하는데 돈을 안 받고 무료 봉사할지언정 입당은 하지 않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다자토론을 통역하는 경우에는 몸이 모자라지 않나.

▷TV 대선토론도 사실 A정당 후보는 A통역사가, B정당 후보는 B통역사가 하는 게 가장 바람직하고, 청각 장애인들이 보기도 쉽다. 미국 방송에서는 그런 사례가 있다기에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건의한 적도 있는데 선관위는 기술적으로 불가능한 일이라더라. 그래서 방송국에 물어봤더니 예산만 있으면 기술적으로는 얼마든지 가능하다고 했다. 다만 후보 숫자만큼 한 화면에 통역사가 들어가려면 카메라도 여러 대가 동시에 돌아가야 하고 화면 자리도 비좁고 어려움이 있을 것 같다.

―동시에 여러 명이 말할 때 어떻게 구별하나.

▷가령 두 사람이 마주 보고 대화할 때는 통역하는 대상과 똑같은 자세로 선다. 왼쪽을 바라보는 후보자를 통역하면 나도 똑같이 왼쪽으로 몸을 튼다. 오른쪽을 바라보는 후보자를 통역하면 오른쪽으로 튼다. 사회자가 이야기할 때는 정면을 바라본다.

―통역하기 가장 어려운 유형은 어떤 사람인가.

▷18대 대선 때 이정희 후보자가 워낙 속사포로 말하다 보니 사람들이 "'이 후보자 사퇴의 최대 수혜자는 수어 통역사"'라는 우스갯소리를 하곤 했다. 그런데 사실 말하는 속도가 빠른 건 별문제가 되지 않는다. 속도로만 치면 뉴스 앵커나 아나운서도 굉장히 빨리 말하지 않나. 통역의 난이도는 사실 "'띄어 읽기"'를 얼마나 잘하는지에 달렸다. 잘 띄어 말하는 사람의 말이 이해하기도 쉽다.

또 한 문장 안에 비슷한 내용이 여러 번 들어간다든지, 주어를 빠뜨리고 말한다든지 하면 옮기기 어렵다. 수어는 주어의 성별이나 연령에 따라서도 달라지기 때문에 남자인지 여자인지, 어른인지 아이인지 주어를 명시해줘야 한다. 같은 교통사고라도 추돌인지 충돌인지, 승용차가 버스를 받았는지 버스가 승용차를 받았는지 등에 따라 다 달라진다.

―표정이 굉장히 다양하다.

▷손으로만 하는 게 수어가 아니다. 처음 배우는 사람만 손을 위주로 본다. 실제 청각 장애인들과는 눈을 보고 이야기해야 전달이 된다. 손은 보조 역할이고, 얼굴을 통해 감정이나 맥락을 전하는 것이기 때문에 중요도로 치면 표정이 50% 넘는 비중을 차지한다. 청각 장애인들도 표정과 손이 서로 엇갈릴 때는 "'손이 잘못됐나 보다"'라고 으레 짐작한다.

―수어가 나라별로 다른가.

▷나라마다 다르고 국제 수어도 있다. 국제 수어는 또 따로 배워야 한다. 우리나라도 재활복지대학과 나사렛대학에서 국제 수어를 가르친다. 영어 수어, 한국어 수어 등 두루 섭렵한 젊은 사람들이 나오면 3개 수어에 능통한 인재도 나오지 않을까. 예전에는 호기심에 수어 통역을 시작하거나 가족 중 장애인이 있어서 발을 들인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그런데 요새는 학생들도 체계적으로 이론을 배우고 농아인 문화를 익히면서 전문가로 자리 잡아 가는 것 같다. 1년에 한 번씩 열리는 필기·실기시험을 통과하면 자격증이 발급된다. 보건복지부 고유번호를 받는데, 아직 공인 자격증은 아니고 민간 자격증이다.

―시급은 어떤가.

▷내가 프리랜서로 장애인복지관에서 15년 근무했기 때문에 군대 경력까지 치면 장애인복지관에서 나올 때쯤 20호봉 정도였다. 그때 내 연봉이 대졸 사원 초봉에 못 미치는 3000만원 정도였다. 그리고 KBS 방송 프로그램 통역은 1990년대 초부터 시작했는데 연차가 쌓여도 그때 시급과 지금 시급이 같다. 1990년대 초부터 급여가 하나도 오르지 않은 것이다. 제대로 된 계약관계로 묶여 있지 않기 때문이다. 협회를 만든 이유 중 하나도 정당한 권리를 주장하기 위해서다.

―전공과 무관한 수어 통역의 길로 들어온 것을 후회한 적은 없나.

▷화학공학을 전공했고, 동네에서 함께 자란 소꿉친구를 따라 우연히 들어선 길이지만 후회하지는 않는다. 수어를 배우기 전까지는 장애인에 대해 전혀 몰랐다. 그런데 수어를 시작하고 장애인복지관에서 일하면서 너무 순수하고 맑은 영혼의 장애인들을 만났다. 1989년에 시각 장애인, 청각 장애인, 뇌성마비, 지체 장애인들이 다 모인 전국 장애인 체육대회를 참관한 적이 있는데 경기가 열리던 상무체육관 안이 마치 낙원 같았다. 서로 기타를 치고 노래를 불러주고, 둘러앉아 박수 치는 그런 자리였다. 장애가 있는데도 나보다 밝고 긍정적인 모습에 감명을 받아 이후 몇 년을 뻔질나게 드나들면서 그 친구들과 어울려 놀았던 것 같다. 2년 가까이 집에도 잘 안 들어갔고, 너무 일에 몰두해 여동생 결혼식을 놓칠 뻔한 적도 있다. 그런 추억이 나를 수어 통역사의 길로 인도했다.

―한국수어통역사협회 회장이 되면서 힘들지는 않나.

▷수어 통역사도 엄연히 자격증이 생기고 하나의 전문 영역으로 자리 잡아 가는데 아직 청각 장애인들 인식 속에는 자원봉사로만 남아 있다. 그런 부분에서 점점 의견 차가 생기는 것 같다. 그래서 장애인 인권과 통역사의 인권이 모두 보호받는 미래지향적인 방법을 모색하고 있다. 인권위원회를 조직해 본격적으로 활동할 생각이다.

―이렇게 일을 지속할 수 있는 힘은 어디에서 오나.

▷내가 좋아하는 일이 많은 분에게 도움도 된다니 더할 나위 없이 좋지 않겠나. 지금 우리나라에 수어 통역을 필요로 하는 청각언어 장애인들이 30만명 정도다. 나의 경우 직계 가족 중에 청각 장애인이 있는 것도 아니다. 그냥 순수함에 끌려 시작했던 자원봉사가 인생을 바꿨고, 수어 동아리에서 지금의 아내도 만났다. 누군가 내 손짓을 통해 세상과 소통하고 있다는 생각을 하면 보람도 느끼고, 재미있는 영상을 통역할 때면 아직도 아이처럼 신이 난다.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은.

▷수어라는 게 예전에는 청각 장애인을 위한 "'배려"'였다. 하지만 작년 수화언어법이 제정되면서 국어로 인정받게 됐고 교재까지 나왔다. 사실 성인들의 인식은 잘 안 바뀐다. 배려가 아닌 권리로 자리 잡으려면 아이들부터 교육해야 하고, 이 아이들이 사회에 나오게 되면 자연스럽게 수어도 외국어처럼 하나의 언어로 받아들이게 돼야 한다.

■ 조성현 회장은…

1966년 경기도 파주 문산에서 태어났다. 1991년 동국대학교 화학공학과를 졸업하고, 우연히 청각장애인들과 인연이 닿게 되면서 수어를 접했다. 한국청각장애인복지회 "'청음회관"'에서 15년간 일하다 1992년 KBS 장애인 프로그램 "'사랑의 가족"'으로 방송에 입문했다.
이후 KBS 뉴스 프로그램 수어 통역을 맡게 됐고, 최초의 합동 TV 토론회였던 1997년 제15대 대통령선거 때부터 대선 토론 수어 통역을 담당했다. 올해는 평창동계올림픽 개막식 통역을 진행했다. 지난해 3월 한국수어통역사협회 초대 회장에 취임했다. 청각장애인의 언어인 수화(手話)는 2016년 한국수어법 제정으로 공식 명칭이 "'한국수어"'로 바뀌었다.

[김윤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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